2017년 5월5일 새벽 5시50분께 가해자 ㄱ씨와 일행 3명, 그리고 피해자 ㄴ씨가 탄 승용차가 경기도 한 모텔 앞에 도착했다. ㄱ씨와 그의 일행은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ㄴ씨를 차에서 옮겼다. ㄴ씨는 허리가 90도로 접힌 상태였다. 신발도 신지 못해 맨발인 그를 ㄱ씨와 일행이 양쪽에서 잡아 모텔로 데려갔다.
모텔 폐회로텔레비전(CCTV)에는 부축이 느슨해지자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는 ㄴ씨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후 ㄴ씨는 ㄱ씨가 술에 취한 상태를 이용해 자신을 성폭행했으며, 정신을 차린 뒤 한차례 더 성폭행했다며 ㄱ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7일 만취한 피해자를 모텔에서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준강간 미수)로 기소된 20대 남성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술에 취해 저항할 수 없었던 여성의 옷을 벗긴 것은 인정했지만, 성폭행 고의는 없다고 봤다. 법원이 가해자 진술에만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피해자 쪽 동의 아래 범행 당시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공개합니다.
애당초 검찰은 ‘쌍방 합의가 있었다’는 가해자 진술을 인정해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피해자는 반발해 재정신청(검찰의 불기소에 대해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행위)했고, 법원 결정에 따라 검찰은 ㄱ씨를 준강간 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첫 재판은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만에 열렸다.
ㄴ씨가 반대했지만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배심원 7명 가운데 5명이 ‘ㄱ씨에게 죄가 없다’는 평결을 내렸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 명령에 의해 기소한 검찰은 재판에서 ‘최종 불기소의견’이라는 의견을 밝혔고, 재판부는 재정사건이니 피고인의 죄를 묻지 않는 ‘백지구형’을 해도 된다고 했다.
부담을 느껴 진술을 포기했던 ㄴ씨는 항소심에서 처음 법정 진술에 나섰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성관계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해자 친구들의 증언이 근거였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형사공판절차에서 무죄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해 채택됐다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국민참여재판 결과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에서의 쟁점은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성폭행할 고의’가 있었는지였다.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한 간음인 ‘준강간’이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항거불능의 상태여야 하고 △그런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려는 고의성이 있어야 한다. 법원은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했다. 그러나 ‘옷을 벗겼지만 마음이 변해 성관계하지 않았다’는 ㄱ씨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만취한 ㄴ씨를 모텔로 데려가 옷을 벗긴 행위 자체가 준강간 실행에 착수한 것이라는 피해자 쪽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해자 중심적 법원 판결이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피해자를 지원해온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중요한 증거가 되지만 준강간 사건에선 피해자가 가해자의 주장에 반박을 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당시 기억이 흐릿하기 때문”이라며 “그럼 수사기관과 법원은 피고인의 진술을 굉장히 엄격하게 판단해야 된다”고 말했다.
ㄴ씨를 대리한 이영실 변호사는 “(법원이) 피해 사실 전후의 객관적 정황과 사정을 기준으로 ㄱ씨의 고의를 판단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고 상고를 기각했다는 건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이날 선고를 법정에 나와 직접 듣고 오열했다.
출처: 한겨례 뉴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37686?sid=102